벨트란 테트라:아직 겨울이야. 사체가 얼어붙기에 좋은 날씨기는 하지만 한 번으로 족하지 않나... (담담히 내뱉는다.) 기분이 어때?
제로:(도통 적응할 수 없는 이질적인 낯에 잠시 눈 뜨기를 포기할까 생각이 스친다.) ......답할, 기분이 아니에요, (침묵.) 저를 왜 살렸죠...... 스스로가 가여워서?
벨트란 테트라:그러게. 내 생각에는 네가 도망치려는 걸 막고 싶었던 것 같네. (조금 전의 내가.) 차라리 복수나 용서 따위의 답을 기대하지 그랬어. 혹은 환각이라고 치부하든가. 도망치기에는 일러, 네게 아직 죄가 있잖아. 아니야? (여기에 있는 내가 그 반증인데.)
제로:......내버려두세요, 제가 제 눈으로 모습을 보는 건 여간 끔찍한 게 아니거든요. (라기에는, 생전 제 손에 죽었던 사람에겐 죽음을 허락하는 지독한 헌신은 없었던가...... 생각이 머물자 감았던 눈을 뜨고 반듯이 웃는다.) 그래요, 제가 어떻게 하셨으면 좋겠어요.
벨트란 테트라:(붉은 눈이 창가에 가닿았다. 낡은 의자를 정리하는 새 옅은 머리칼 한 줌이 어깨로 흘러내린다.) 생에서든 사에서든 존재하기만 했으면 하고 바라니 어떻게 하든 상관 없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까. 이타심에 헌신하기를 거부했으니 네 죄악 심판에 어울리는 사람은 아닌가 봐, 내가. 달리 바라는 건 없고, 하나만 대답해 봐. 지금 네가 제정신인지 알려줘. (이를테면, 비정상의 색채 같은 근거.)
제로:(네 행동 하나 빼놓지 않고 가만히 눈에 담아낸다. 이윽고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대답에 탄식 비슷하게 차가운 숨 내뱉는다.) ...... ......그러면 미쳤게요. 사실 조금은 미쳤다고 생각도 했는데요. 아니, 미쳤는지도...... (개의치 않은 양 막연히 하늘 올려다본다.) 제가 미쳤는지가 뭐가 그렇게 중요하죠, 만일 어떻게 해도 괜찮다면 거기 계세요. 마저 하던 거 할게요. (멀찍이 던져진 밧줄 질질 끌어온다.)
벨트란 테트라:아직, 기다려. 내가 결정을 못 했거든. 어떻게 할지. (조금만 더 살아. 그토록 죽고 싶은 마음은 알겠으나, 내가 네 죄악이 될 수 있다면 조금만 더 겨울을 들이켜.) 그래줄 거지? 오래도록 살아달라는 것도 아니고 잠깐인데. (이 정도 부탁은 해도 괜찮잖아. 부탁이 안 되면 그 다음은 강요겠지만.)
테트라는 당신의 손에서 밧줄을 앗아간 후, 차갑게 식어버린 벽난로에 장작과 함께 집어넣습니다.
같잖은 죄책 따위 있으니만 못하겠지만요. 그런 사소한 이유가 아니라, 무언가 기묘한 이질감이 듭니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을 겪고도 무감한 당신에게는...
...
벨트란 테트라는 차를 한 잔 내와 당신에게 내밉니다.
향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이곳과 당신과 그는, 얼어붙어있네요.
제로:(앞으로 숙여 늘어진 머리칼의 색채에 역겨움이 속절없이 밀려왔다. 그대로 미동없이 굳어 있다가 손으로 느리게 치워낸다. 이는 필시 추위의 탓이다......) 생각해보면 저는 정말 미쳤는지도 모르겠어요.
벨트란 테트라:(아무래도 상관 없지. 그게 무어가 그렇게 중요한데. 네가 했던 말 그대로 읊는다. 억지로 입꼬리 올리는 듯싶더니 네 녹색 눈 똑바로 마주본다.) 제대로 봐, 제로 베르첼. 네가 나를 죽였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지금부터 네 죄악을 자처할 거고. (그리고 그 다음은 고민 중이야, 말했듯.) 나의 이 끝없는 헌신을 네게 향하도록 하고, 그래서 내가 너를 죽인다면 받아들일래? (아, 물론 참고하고자 묻는 건 아니야. 이기적이게도 네 의견 묵살하고 전부 내가 결정할 거거든.) 그럼 감히 말하건대 네겐 구원이겠다. 그렇지...
제로:(눈 느리게 감았다 뜬다. 이런 환상에 지독히 파묻혀 있을 바에야 아까 진작에 죽었어야 했는데.) 벨트란 테트라는 내게 끝을 맹약했어, 마땅히 이야기를 나누었던대로 마지막에 함께해준 것뿐이고. (지친 얼굴로 차 한 모금 들이키고는 조용히 웃는다.) 어차피 제 의견은 안중에도 없는데 묻는 이유는 조롱을 위해서일까요. (근데, 확실히. 당신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자살하기는 조금 어려운 것도 같고. 그렇네. 그런 점에서는 당신의 살인이 제게 오롯이 구원이 되겠다.)
벨트란 테트라:그렇지. 하지만 네 탓이 아닐지라도 나는 아직 살아 있잖아. 맹약을 지키지 못한 셈이지. (더욱이 나를 살린 것도 네가 아니고. 이리 생각하니 더 이기적인 악인이 될 수 있을 것 같지만. 일단은 제해두고.) 알아서 받아들여. 구태여 조롱으로부터 얻을 게 없다는 생각은 해주었으면 좋겠지만. (네 살인으로 내가 죽었으니 대강 구원이라고 치면 이제 내 차례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나온 발상이지. 영 새롭진 못하다. 겨울 눈송이 따라 문장이 배치된다. 네 손목 잡아올려 맥박 뛰는 곳 세게 눌러보았다. 그래, 아직 살아 있네.) 네게 진 빚은 그 죽음으로 갚을 수 없다는 건 알아. 네가 날 몇 번이고 죽여도 족하지 않단 사실도. 그렇다면 차라리 내가 널 죽임으로써 구원하고 청산하는 게 빠르지 않겠어. 지독히 옅은 네 사체 끌어안고 오늘 밤을 나기는 싫으니... 뭣하면 따라서 죽어줄게. (이것 또한 헌신.) 너를 원망하는 내가 싫으니까. (살인자, 제로 베르첼... 속삭인다.)
제로:(입가에 비릿한 미소 스며든다. 혀끝에서 느껴지는 달큰함과는 확연히 거리가 멀다. 몸을 타오르는 듯한 감각을 떨쳐내려 몇 번 움찔인다.) 구식적인 발상인데 제법 효과적이었네요. (사실 그 마지막 하나 제게 헌정한 것으로 충분했는데...... 이제와서 그리하자니 자처해 헌신하겠다는 사람 앞에서 답하기는 조금 기분이 미묘하게 나빠져서. 뻐근히 팔 움직이다 제 목가로 손 가져다댄다.) 그러면 그 헌신을 마치고 죽어요, 벨트란. 그 살인자가 된 후에 마침 당신 따라 죽으려던 참이었으니까....... (고개 슬며시 비틀어 역겹다는 양 시선 흘긴다. 괜히 상기시키지 말고.) 그러면 그렇게 없던 일로 합시다. 목을 조를 거예요?
벨트란 테트라:(그럴까. 네가 했던 대로. 네 목덜미로 시선 흘린다. 가늠하듯 한참 보다가 눈 올려 시선 맞춘다. 지금은 여름도, 어렸던 날도, 노을 질 시간도... 그 무엇도 아닌데. 그래서 낭만적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날씨였다.) 사람이 두 번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죽은 사람이 다시금 구원받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해. 답 바라지 않은 질문을 던져낸다. 살아난 내가 아직도 죽을 수 있을지, 사람은 맞을지. 사람도 불사도 아닌 존재가 된 건 아닐지. 요지는 그거야. 말 끝나면 차근히 네 목에 제 손 가져간다. 다급함이라고는 애초에 없었다. 거부하지 않을 걸 아니까.) 음, 그래. 소감을 말할게. 너를 구원하거나 혹은 썩어가는 진창, -그러니까 삶..._으로 내던질지 정할 수 있게 되어 기뻐. (네게는 죽음이 구원일 테지. 분명.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생명이 구원이라 칭하겠지만.) 용서라는 단어가 어울릴지는 모르겠다. 대신 구제 救濟가 낫겠네. (네 맥박에 제 피와 살점, 뼛조각 얹은 채로 거리 좁힌다. 아주 작은 거리만이 남았을 때 구절이 들려온다. 네 색채를 지닌 내가 말하는 것조차도 문장이라면... 순간 속살인다.) 없던 일로 하지는 말고. 우스갯소리로 하는 농담인데... 낭만이 슬퍼할 걸. (간극 흘리다가.) 단죄할게. 너도 살해로서 나를 단죄했으니. (죽을 만큼만 살아. 지겹겠지만, 그게 내 결론이니까. 알잖아? 나 항상 식상한 거. 느긋한 말을 마지막으로 입 맞춘다. 다소 억지스럽고, 이상할 정도로 깊으며 건조하고 메말라 있다.)
제로:(그러나 죽음을 마주하기에는 기이하리만치 익숙한 날씨이다. 조용히 울리는 목소리에 새하얗게 눈이 쌓여가는 창 너머에서 눈을 돌린다. 지금 죽는 사람은 자신임이 자명했음에도 분명 저 창에 비칠 사체는 벨트란 테트라의 것이리라.) 두 번 죽을 수 있을까…… (네 말 나지막이 따라한다.) 그건, …… 조금 망설여지네요. 만약 당신이 죽지 못하면 어떡하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침묵한다. 체온이 선연한 목에서 쥐어짠 말은 썩어들어가는 죽음과 다름이 없다.) 그렇게 된다고 해도 헌신은 오롯이 저를 위해 남기세요. 어차피 그 끝은 제 거였잖아요. (한 번 소유하길 허락했으면 거두지 말라고, 작은 목소리로 너 따라 소곤댄다. 삶을 바라기에 지금의 자신의 비정상인이다. 그리고 이전에도, 단 하나의 예외없이.) .......그래요, 단죄. 그리고 곧 구제...... (하지만 이 뒤에는 없어야 한다고, 이게 당신의 마지막 구제가 되어야만 해, 벨트란 테트라. 닿아오는 메마른 온기에 조용히 눈 감았다 뜬다. 옅게 웃어보이고는 네 신체一자신의 것으로 보이는 몸 앞으로 비스듬히 기댄다. 그 일련의 행동마저 지겹다는 양 네 어깨 붙잡으려던 손 떨어뜨리고, 동시에 차가운 숨이 고개와 함께 곤두박질친다. 비릿하게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