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틴과 둘이서 마차 안에서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도착했다는 마부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얼마 걸리지 않을 거라고는 했지만, 저녁 시간이라 해가 빨리 저물었기 때문일까요.
마차에 올라탈 때는 분명 일몰의 기운으로 어슴푸레하게 접어들었던 하늘이 지금은 별이 보일 정도로 까맣게 물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별이 빛나는 하늘 아래 단출하게 서 있는 저택이 눈에 들어옵니다.
넓지 않은 정원과 낮은 층수를 가진 저택은 상류층보다는 중산층의 그것입니다.
최근까지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오래되어 보이지만, 흉물스럽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안정감이 느껴지는 장소입니다.
발렌틴은 부드럽게 당신을 에스코트하여 발을 들입니다. 작은 정원을 지나쳐 저택 안으로.
...
손님방으로 가방을 옮기는 것을 도와준 발렌틴은 손에 들린 가방을 내려놓더니 말을 꺼냅니다.
플로렌틴 발렌틴:씻고 싶으시다면 방으로 데운 물을 올려드릴게요. 사용인이 있는 날이라면 사용인을 보내드렸을 텐데 오늘은 방문하지 않는 날이라, 저밖에 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없네요. 불편하실 것 같다면 거절하셔도 괜찮아요.
그러고 보니, 교회에서는 눈을 맞은 머리를 닦기만 하고 말리는 것에 급급했었지요.
이대로 있으려니 위생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용인마저 없다고 들은 마당에,
발렌틴에게 도움을 받아 몸을 씻어야 할까요?
디안 밀리테:(조금 찝찝하긴 하지만...) 하루 정도라면 괜찮아요. 갑작스레 손님으로 와서 방을 얻은 것 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처지인데요, 저는. (옅은 웃음...)
(그리고 숙녀 분께 도움을 받는다니 디안의 정신이 허락하지 않는다...)
지금 샤워를 하기에는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집도 아닌, 처음 오는 곳에 심지어 이 저택에는 발렌틴과 단둘뿐인 것을요.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의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플로렌틴 발렌틴:편하실 대로. 쉬고 계세요. 많이 피곤하실 것 같아요.
...
밀리테는 불현듯 아직 이 저택 내부를 안내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이미 발렌틴은 자신의 일을 하러 가버린 뒤였네요.
쉬려니 영 마음이 불편하고. 그렇다고 주인에게서 안내받지 못한 곳을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괜찮은 걸까요?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현관을 통해 들어오는 1층에는 응접실을 겸하는 [거실]과 거실 밖으로 이어지는 [로지아],
그리고 그 맞은편에 [식당]과 지금 발렌틴이 있는 [부엌]이 있습니다.
복도를 지나 계단으로 올라오는 2층에 [발렌틴의 방]과 밀리테에게 내어진 [손님방], [서재]와 [갤러리]가 있습니다.
어디부터 가볼까요?
디안 밀리테:(거실부터 둘러본다!) 응접실 정도는 손님이 둘러봐도 되겠지...
✎:응접실로도 쓰이는 거실에는 따뜻하게 불을 지핀 [난로]와 [소파], [테이블], 그리고 [장식장]이 있습니다.
디안 밀리테:(테이블 가서 살핀다. 기웃기웃...)
✎:테이블 위에는 신문이 놓여 있습니다. 신문의 내용을 확인한다면 의문의 강도살인 사건으로 인해 피해를 본 부부에 관한 기사가 올라와 있습니다.
……이건, 당신과 당신의 아내에 관한 기사입니다. 범인이 잡히지 않은 살인 사건.
✎:물품을 훔쳐 간 흔적은 없으나 아내는 저택에서 살해되었고 부인 또한 피해를 입었다.
부인의 경우 심각한 부상은 아니었으나 정신적…… 충격을 호소…….
허억. 급하게 숨을 내쉬며 손에서 신문을 내려놓습니다.
잊으려 노력했던 기억들이 당신의 머릿속을 헤집습니다.
디안 밀리테:아, 이런... 젠장. (작게 중얼거렸다.) ...잊어야 하는데. (말 내뱉고는 소파로 고개를 돌렸다. 별 건 없겠지만...)
✎:소파 위에는 쿠션과 모포가 푹신하게 쌓여있습니다. 낡은 질감의 소파지만 꾸준하게 관리되어 헤진 부분이 없어 보입니다.
누군가의 손길을 계속해서 받는 집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디안 밀리테:따뜻한 집이네. (자기 집 떠올리곤... 고개 저었다. 거긴 사람 사는 곳 같지가 않아, 특히, 아내가 죽은 이후로는...)(난로 쪽으로 걸어갔다.)
✎:난로는 불꽃을 내며 빨갛게 타들어 가고 있습니다. 난로 앞에 세워진 철망에 부지깽이가 걸쳐있고 낮게 장작이 타들어 가는 소리가 평화롭습니다.
불길에 의한 그림자가 낮게 일렁입니다.
디안 밀리테:평화롭네. (마지막으로 장식장 가서 살폈다.)
✎:은식기와 작은 조각들, 어느 집에서나 볼 법한 장식품들 위주로 전시되어 있습니다. 어째서인지 위화감이 느껴지지만, 영문은 모를 일입니다.
디안 밀리테:(...위화감? 고개만 기울였다.) 특별한 건 없네. (여느 가정집 같아. 그리 생각하며 거실과 연결 된 로지아로 나가보았고)
로지아로 나서자 추운 바깥 공기가 훅 끼칩니다.
✎:이런 이탈리아식 로지아 구조가 있는 건물은 드물 텐데요. 겨울이라 사그라든 정원이 로지아의 뚫린 시야 너머로 보입니다.
가느다란 티테이블과 두 개의 의자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로지아는 분명 봄이 되면, 제 역할을 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디안 밀리테:봄이 되면 꽤 볼만 하겠어... (봄이 오면 다시 초대해달라고 말할까, 라는 생각을 했다가 멈춰 섰다. 대체 오늘 처음 보는 사람한테 뭘 요청하려는 거야, 디안 밀리테...)(문 닫고 들어와 이층으로 올라갔다. 손님방으로 들어가 살펴본다.)
✎:밀리테에게 내어진 손님용 방입니다. 1인용 [침대]와 [테이블], 몸을 씻을 수 있도록 준비된 [욕실]과 [수납장] 등이 있습니다.
디안 밀리테:(침대부터 살펴본다. 손님으로 와 깐깐하게 살피는 게 예의가 아니란 건 알지만 몸에 벤 습관이 그러해서...)
✎:침대 옆에는 당신이 놓아둔 짐가방이 놓여 있고 침대 위에는 하얀색 시트가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침대에는 큰 특징이 없습니다.
밀리테의 가방을 조사한다면 아침을 겸한 점심으로 챙겨두었으나 먹지 못한 샌드위치, 사용한 지 10년이 지나 낡은 지갑, 길거리에서 받아 아무렇게나 챙긴 신문과 이제는 끼지 않는 보석 박힌 결혼반지, 밀리테의 사진이 담긴 로켓 목걸이가 있습니다.
샌드위치는 상하지 않았고 신문은 뒤져보면 날짜가 2주 이상 지난 신문이라 딱히 얻을 정보는 없습니다.
지갑 안에는 약간의 현금과 밀리테의 집 열쇠가 들어있습니다.
디안 밀리테:(지갑 확인하곤) 내일 집에... 돌아갈 여비는 잘 있네. (이부자리 정리 탁탁하고 근처에 있는 테이블을 살폈다.)
✎:테이블 위에는 당신이 벗어서 걸쳐놓은 코트가 놓여 있습니다. 목이 마를 거라고 생각했는지 발렌틴이 가져다 놓은 물병이 보입니다. 둘 다 특별한 점은 없습니다.
코트를 뒤적거리면...
동전 두어 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재력 +2
디안 밀리테:(오... 넣어두고 잊어버렸나. 잘 챙기곤 욕실 한 번 열어본다.)
✎:욕실 안은 메말라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자동 수도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욕실이기에 이곳에서 샤워하기 위해서는 물을 올려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발렌틴은 그것을 도와주겠다고 한 것이겠지요.
디안 밀리테:(혼자 사는데 수도가 잘 안 되어 있으면 불편하지 않나... 그런 걱정을 삼키며,) 역시 거절하길 잘했네. 몸도 약해보이는 사람이 무슨 물을 올려준다고... (투덜투덜... 문 닫고 수납장 쪽으로 갔다.)
✎:수납장 안에는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손님방인지 조금의 먼지만 있을 뿐입니다. 수납장 위에는 밤에 사용하는 것으로 보이는 등불과 성냥이 있습니다.
디안 밀리테:밤에 어두울 걱정은 없겠어. (등불 위치 기억해두고 손님방을 나왔다. 옆에 무슨 방인가하고... 갤러리로 이동했다.)
✎:갤러리의 문은 굳게 잠겨있습니다. 열쇠가 없다면 열 수 없어 보입니다.
디안 밀리테:음...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속으로 생각하며 서재로 이동... 여기도 열쇠가 필요한가?)
✎:서재의 문은 굳게 잠겨있습니다. 열쇠가 없다면 열 수 없어 보입니다.
디안 밀리테:(집주인도 아닌데 열쇠를 막 찾아서 여는 건 예의가 아닐 것 같다는 생각...... 남은 플로렌틴의 방 앞에서 문 두드렸다.) 로렌, 거기 있어요? 들어가봐도... (말이 뭔가 이상해서 멈칫,) ...될까요.
안에서는 대답이 없습니다. 방에 없는 걸까요? 문은 잠겨 있지 않습니다.
디안 밀리테:(갈등... 들어가는 거 완전x100 실례인데... 하며 고민하다가.) 들어... 갑니다? (결국 문 열어본다.)
발렌틴의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어봅니다.
손님용 방으로 내어준 곳과 크기와 구조 면에서는 크게 차이를 보이지 않습니다.
✎:방 한쪽 구석에는 [침대]가 있고 그 침대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테이블]이 있습니다. [수납장]으로 보이는 곳과 [드레스 룸], [욕실] 정도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디안 밀리테:(가장 먼저 보이는 침대부터 살펴 봄... 이상한 생각으로 보는 게 절대 아닌 그저 호기심일 뿐임...)(하고 자기세뇌하기.)
귀여워
✎:그다지 화려하거나 아주 값비싼 침구는 아닙니다. 이 정도 규모의 저택에 어울리는 침대이긴 하지만, 그래요. 어딘지 모르게 위화감이 느껴집니다.
디안 밀리테:
지능
기준치:
70/35/14
굴림:
3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아까부터 위화감이...)
✎:이 침대는 발렌틴 혼자 사용하기에는 큰 침대라는 생각이 듭니다. 굳이 사이즈를 따지자면 2인이 사용하는 것이 적당해 보이네요.
디안 밀리테:(왜 2인용 침대가? 하고 생각하다가...) 혹시 남편이 있다던가, 하는... (그럴만도...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좋아보였으니까. 근데 왜 나한테 그런... 그런 말들을? 역시 혼자 사는 건가?)(혼란만 증가했다... ...옆에 있는 테이블 살펴본다.)
✎:테이블 위에는 장미가 꽂혀있는 화병이 놓여 있습니다.
메리골드. 당신이 꽤 좋아하는 꽃입니다.
디안 밀리테:이 꽃을 꽂아두는 사람을 많이 보진 못했는데. (옅게 웃었고...)(수납장도 가서 살펴보았다. 특별한 건 없겠지만...)
✎:수납장은 열쇠로 잠겨있어 열리지 않습니다. 하긴, 주인이 있는 방에 들어와 수납장을 열어보려고 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디안 밀리테:(양심의 가책에 땀 뻘뻘....... 내가 무슨 쓸데없는 생각을 한 거지.)(생각은 그렇게 하며 열심히 돌아다닌다... 드레스 룸도 기웃거렸고)
✎:드레스 룸은 잠겨있습니다. 하지만 저택 규모로 보았을 때, 드레스 룸과 붙박이장의 중간 정도의 크기인 듯싶습니다.
디안 밀리테:(내가 또 무슨 쓸데없는 생각을...!!)(욕실은... 별 다를 게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정말 실례 그 자체인 것 같아 둘러보지 않는다...) ...로렌은 어디로 간 거지. 방에서도 안 보이면... 식당에 있으려나. (다시 1층으로 내려가 식당으로 가보았다.)
플로렌틴 발렌틴:내일 아침에 시간이 된다면 함께 어디 가보지 않겠어요? 어디인지는 말해주지 않겠지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소예요.
디안 밀리테:가장 사랑하는... (네가 사랑을 말하는 울림이 듣기 좋아 무심코 되뇌였다.) 좋아요. 어차피 중요한 일정은 없으니까. (앞으로도, 한동안은...)
플로렌틴 발렌틴:(만족스럽게 고개 끄덕이고 앞자리에 앉는다.) 좋아요. 음식은 입에 잘 맞나요?
디안 밀리테:방금 준비하신 거예요? 정말 제 취향이라... (놀랐어요. 옅은 웃음 지었고.) 고맙습니다. 방 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플로렌틴 발렌틴:취향이었다면 다행이에요. (몇 입 들다가 일어서 네가 있는 곳으로 간다. 네 잔에 느긋하게 와인 따라주었다. 가까이서 몇 마디 더 뱉는다.) ……혹시 아직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요? 기억이 나지 않나요? 사실 나는 당신과 장례식 이전에도 만난 적이 있어요. 딘.
디안 밀리테:(고개 기울였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음, 죄송해요. 기억이 잘 나질 않아서... 구체적으로 어디서 만났는지 말 해주면 기억이 날지도요. (어색한 웃음 지었다. 와인 고마워요. 그 말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고.)
플로렌틴 발렌틴:(태연하게...) 네, 포옹이요. 친구 사이인데도 좀 어려울까요. (부담 가지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작게 덧붙이지만.)
디안 밀리테:(친구 사이에는 보통 하지만... ...오늘 친구가 되었는데도.....?)(그래도 뭔가 그렇게 말하니 못할 건 또 없겠다 싶어서 가까이 다가가 살짝 안고는) 좋은 밤, 좋은 꿈 꾸세요, 로렌.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곧 부끄러운 듯 빠르게 멀어졌지만...)
플로렌틴 발렌틴:(마주 안으려다 네가 멀어진다. 네 손목 부근 옷깃 살짝 잡아 멈춰세우고 꼭 안은 다음 놓아준다. 놓기 직전 속삭이기를.) 좋은 밤, 딘. 내일 봐요.
디안 밀리테:...질이 나빠. (인상 잔뜩 찡그렸다. 대체 왜 이런 짓을? 그러다 보면 떠오르는 강도 사건. 집안 물건 중 없어진 건 없는데 아내만 살해 당해서... 그 쯤 생각을 멈췄다. 더 생각하다간 돌이킬 수 없는 결론을 내려버릴 것 같아...) 나가자. 나가, 나가야지. 주인 자는데 여기서 뭐하는 짓이람. (하하. 중얼거리고 빠르게 방 밖으로 나갔다.)
남은 열쇠는... (분명 서재의 것이겠지만. 그 안에도 이런 게 있으면 어떡하지? 그런 걱정이 앞서 방 앞에서 머뭇거렸다.)
✎:뒤틀리고 억눌린 증오,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선명한 분노, 이성을 집어삼킬 정도로 거대한 원망.
거부할 수 없는 감정들이 손상된 초상화로부터 전해져옵니다.
만약……. 만약 이 모든 액자의 훼손을 저지른 것이 발렌틴이라면, 그렇다면 혹시,
...
플로렌틴 발렌틴:딘? 여기서 대체 무얼 하고 있는…….
당신이 갤러리의 문을 미처 닫기도 전에,
당신의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집니다.
열린 갤러리의 문 사이로 등불을 든 발렌틴이 서서, 멍한 얼굴로 당신과 커다란 그림이 걸린 액자를 번갈아 가며 바라봅니다.
플로렌틴 발렌틴:……밤이 늦었으니 자러 가요.
디안 밀리테:...로렌.
발렌틴은 당신에게 손을 내밉니다.
그 언젠가, 그랬듯이요.
하지만 저 손의 의미는 많이 달라졌을 겁니다. 처음 발렌틴이 당신에게 내민 손이 수줍음과 허락을 구하는 의미였다면 지금은…….
지금은 어떻게 느껴지나요?
디안 밀리테:(무섭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쳐내고) ...아. 죄송, 해요.
플로렌틴 발렌틴:(...손 내렸다가 한 걸음 다가선다.) 모두 설명해줄 수 있어요. 하지만, 내일 함께 저와 가주기로 하셨잖아요. 해가 뜨면, 모두 이야기할게요. 하지만 아직은 안 돼요.
단 한 가지만, 맹세하자면 그 초상화를 훼손한 것은 제가 한 일이 아니에요.
디안 밀리테:손상한 게 당신이 아니더라도, 왜 저랑 제 아내의 초상을 모으고 있던 건데요? (말이 날카롭게 나갔다. 입만 꽉 깨문 채.) 솔직히 말하자면 당신을 믿을 수 없어요. 지금이라도 짐 싸서 나가는 게, (원래라면, 맞을 테지만... 알 수 없는 그리움, 그런 것들에 자신도 모르게.) ...아니에요. 내일, 내일 얘기하죠. 부디 훌륭한 변명거리를 준비해놓으시길.
플로렌틴 발렌틴:(어설프게 웃었다. 달리 할 수 있는 말이 없어서, 네게 손 뻗어 거부당하지 않을 자신이 없어서.) 네, 그럴게요. 기다려주세요, 딘. (마른침 삼킨다. 네 손목 약한 힘으로 잡았다.) 우리 아직 친구, 맞죠? (다소 조급하게. 하지만 아니라고 해도 상관 없어. 나 혼자 이 관계를 정립하면 그만이야. 그런 생각들을 하고 나서야 매끄러운 미소가 나왔다.)
디안 밀리테:(그대로 지나치려다 손목을 붙잡히고 멈춰 섰다. 네 얼굴을 바라보는 눈에 혼란, 배신감, 등이 가득 섞인 채로...) 친구요? 글쎄요, 이걸 보고도... 계속 친구를 할 사람이 있으면 전 그 사람의 비위를 칭찬해주고 싶네요. (웃는 꼴이 쓰다.) ...이만 들어가볼게요.
어찌되었든 내일, 발렌틴은 모두 이야기해 줄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말이라고 하더라도 당신에게는 진실만을 이야기하겠지요.
그러니 오늘 밤은 편하게 잠드는 것밖에 당신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플로렌틴 발렌틴:(가만 놓아준다. 네 미소 억지로, 끝까지 바라보았다.) 네, 딘. 이만 주무세요.
플로렌틴 발렌틴:내가 네 앞을 막아서 글라아키의 가시에 찔렸을 때, 그리고 그의 신도가 되었을 때... 그래서 네가 신실하게 굴던 나를 죽였을 때조차 나는 네 행복을 바랐어. 그의 제물 정도면 충분히 행복하지. 응? 디안. (스러지는 너 따라 주저앉는다. 바라보았다.)
가까이에서 보는 발렌틴의 목덜미에 선명한 흉터가 보입니다.
제정신이 아니었던 발렌틴, 그의 옆을 지켰던 당신. 지키다가, 견디지 못하고 아내를 죽였던 기억이 이제는 생생한가요?
디안 밀리테:내가 너를... (죽였어? 아, 악몽이 떠오른다. 악몽이 아니라, 현실이었나. 그동안 기억 한 구석으로 밀어 넣었던 일들이 떠오른다. 그래, 강도 따위가 아니다. 내 손으로, 너를, 네 목을...) 아... (손을 뻗는다. 흉터가, 손 끝에 닿아서.) 로렌, 내가, 나는...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거지. 난... 미안해. 미안, 이것만으로, 네게 사죄가 되진 않겠지만. (미안해... 그 말만 반복해 속삭인다.)
플로렌틴 발렌틴:아니, 나는 기쁜 것 같아. 네가 마지막까지 기억을 잃은 채가 아니라 다행이다. 네가 나를 알아봐 주어서 기뻐. 네가 내게 영영 손 뻗지 않으면 어떡할까 걱정했어... (환하게 웃었다. 눈가가 붉었다. 네게서 흘러나는 핏물이 무릎 아래로 질척였다.) 너는 나를 죽였지만, 딘. 그는 나를 살려주는 조건으로 너를 바치라고 했거든. 그래서 승낙했어. 작별인사를 하려고. (네가 나를 죽일 때는 말이야... 그때는 작별인사를 못 했잖아. 숨이 고르지 못하다. 기쁜데도, 열이 오르고 눈이 아팠다. 제 손의 반지 두 개를 만지작거린다.) 너는 어때. 슬퍼? 내가 고작 작별인사 하나 하려고, 다시 돌아와서 너를 죽였음에.
디안 밀리테:널... 이해하지 못하겠어.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네 손에 죽는 건 괜찮아. 나의 죄가 깊으매, 네 손으로 끝내는 것이 나의 속죄라면 받아들여야겠지. (눈 앞이 흐리다. 지금 제 감정은 자신도 모르겠다. 원망, 사랑, 안도, 그 따위의 것들이 한데 섞여서.) 그렇지만, 그래... 슬퍼. 네가 원망스러워. (침묵했다.) ...우리는 왜 여기에 다다랐지? 너는 왜 지옥에 있지 않고 여기에 있어? 작별인사, 그런 게 뭐가 중요하다고. 나는 널 만나서 건낼 작별인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네 죄는 내가 널 죽여 내 것이 됐으니, 지옥에서조차 손 잡고 나란히 있는 것이 허락될 수 없는 걸 알았으니까... (웃는 꼴이다. 당연한 듯 네 죄를 짊어지는 꼴이 익숙해보였고) 죄를 늘릴 필요는 없었어, 멍청한 로렌... (원망의 이유란 이러하다.)
플로렌틴 발렌틴:괜찮아, 괜찮아, 딘. 단순히 죽는 게 아니야. 그의 신도로 널 바친 거니까. 비록 나는 한 번 죽었고, 다시 살아나 숨 쉬고 있지만 언젠가는 죽은 너의 손을 잡을 수 있을 거야. 오래 걸리지 않아. (죄를 원망해본 적은 없었다. 너와 눈을 맞출 수 있게 된 이후부터는 없었으면 하고 바랐던 적도 없다. 하지만 지금은, 죄의 존재가 싫다. 네게 원망받게 하는 원인이라. 원망 사이에 사랑이 없었다면 미쳐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두 번 미칠 수도 있을까? 디안, 우리는 한 번도 제정신인 적이 없었는데. 우스웠다. 구태여 자조하지는 않는다.) 됐어, 딘. 다 필요 없으니까. 나는 어차피 다시 네게 손을 내밀 거잖아. 그걸 알잖아. 조금만 기다리면 돼. 기다리기 싫으면, 가시로 나를 찔러서 죽여도 괜찮아. 하지만... (네 손 맞잡는다. 다급하게. 네가 시야를, 숨을 잃기 전에.) 사랑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이제 너도 내게 사랑한다고 말해줘. 난 그거면 돼.
디안 밀리테:(나는 믿지도 않는 신의 제물로 바쳐진다, 너의 손으로. 되려 신이 있다면 난 너라고 생각했는데.) 네가 그를 사랑하는 게 싫어... (그러나 모든 원인은 자신이니, 제일 싫은 건 자신이라해도 모자람 없다.) 넌 예전에, 내 손을 잡아주면 안 됐어. 몇 번을 생각해도... 그건 정말 멍청한 선택이었는데. (네가 내 불행에 휩쓸렸잖아.) ...내게 다시 손 내밀어줄 거야?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내 삶을 너로 물들이고... (주위에 흥건한 혈흔 탓일까, 역겹고도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네 손을 잡았을 때의 체온이 떠오른다. 딱 이쯤의 온도일까.) 내가 어떻게, 너를 찔러, 로렌... (손 뻗었다. 내 뺨을 쓸었고.) 난 너를... (사랑하나? 이것도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가? 결국 서로를 죽고 죽여도, 이것을 사랑이라 명명해야하는가?) ...사랑해. (그러나 사랑이 아닌 다른 단어가 없어서. 결국 사랑을 입에 담게 된다.) 사랑해, 응, 사랑 말고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서... (모든 것이 흐리고, 숨이 느려지는 과정에서, 손을 툭 떨어트리고는) ...아, 로렌, 죽기 싫어.
플로렌틴 발렌틴:나는 너를 사랑해. 너를 사랑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원망하지 말아. (네가 자조하리란 사실을 앎에도 탓을 했다. 네가 너로서 존재하는 게 좋아. 하지만 네가 나로서 존재하는 건 비할 수 없을 만큼의 기쁨이야. 그래서.) 응. 디안. 너를 죽인 책임을 질 거야. 네가 싫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 돌이킬 수 없다고 말해왔잖아, 언제까지나. 너는 그 말에... 몇 번이고 그래도 괜찮다고 답한 대가를 치르는 거야. (뺨에 느슨한 감각이 든다. 손보다, 네 눈에 온기가 있다. 그마저도 꺼져가고 있지만. 아, 저무는 태양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거 알아? 딘. 나는 네가 죽어가는 모습을 정말로 좋아해. 꺼져가는 낮빛을 끝까지 들여다 보고 있으면 꼭 그게 나만을 위한 볕이라는 착각이 들거든. 네가 모두를 사랑함을 알지만 그래도 나는 좋아. 다만 내가 지금 울고 있는 걸 보면, 역시 살아 숨쉬는 너를 가장 사랑하는 것 같네. 너를 세게 안는다. 피에타의 품도 서늘하기 그지없는데. 어쩌겠어.) 걱정하지 마, 제발, 부디. 너는 다시 이 세상을 볼 수 있을 거야. (다시 세상을 바라볼 네가 지금의 너는 아니겠지만. 비록 네가 껍데기만 같은, 글라아키의 신도인 채라고 해도.) 이게 내 사랑이야. 딘. 우리 다음에 만나면, 그때는 조금 더 다정한 사랑을 해보자. 그래. 나도 알아. 이건 너무 잔악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