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레스타 엘렌웰:아트, 어쩔래? 사실 나는 네가 좀비와 악전고투 하는 모습이 보고 싶어. (어깨 미약하게 떠민다.)
아트록스 벨리움:(일그러진 낯으로 너 한 번 돌아보고, 입 연다.) ...제가, 가서 발악해봤자 살아남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 말 끝에 미약한 원망이 서린다.) 도망가요, 엘렌. (제발. 좀비로부터 억지로 시선 돌려 네게 맞춘다.)
디레스타 엘렌웰:살고 싶으면 죽이고 살아남으면 되잖아. 겁이 나, 아트? (이질적일만큼 가벼운 투. 네 어깨를 감싸고서는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띤다. 아무리 봐도 네가 죽길 바라는 표정은 아니었다.)
아트록스 벨리움:(...그래도 사람이었잖아요, 전에는. 변명 같았고 실로도 그랬다. 제 목숨 부지란 열망 앞에 죄책 따위는 고개도 못 든다. 감싼 어깨 아래로 미약한 떨림이 전해지리라고... 흐르는 시간에 고개 돌려 제 앞 좀비들로 시선 향한다. 짧은 칼 하나로 무얼 어떻게 하라고.) (...좀비들이 다가올 때, 어설프게나마 칼 휘두른다. 죽이려고 한다기보단 자기방어에 가깝게.)
디레스타 엘렌웰:(힐끗 뒤 돌아보더니, 숨 얄팍하게 고르고.) ...다 따돌렸어, 아트. 네가 좀 더 잘했더라면 이러진 않아도 됐을 텐데, 응? (그런 말 던지며 또 버릇처럼 웃는다.)
아트록스 벨리움:(호흡 가다듬고, 손에 자국 남을 만큼 꾹 쥐고 있던 칼날과 제 손의 피 손수건으로 닦아냈다. 눈은 가라앉고, 목소리는 흔들린다. 제 손목 쥐고 답했다.) ...죄송해요.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었어요. 그들이 너무... (약하지 않았다고. 끝말 삼킨다. 그제서야 주변 둘러보았다.)
엘렌은 건조한 시선으로 당신을 겨누어 보듯 하더니, 이내 손목을 놓아 버립니다.
눈 앞에는 [이스트 베일에 어서 오세요], 라고 적힌, 핏자국이 말라 붙어있는 간판이 새벽어스름너머로 보이고요.
디레스타 엘렌웰:...가자. 곧 동이 틀 테니 이 마을에 머물러야 해.
아트록스 벨리움:(...) 머물 곳이 있을까요.
디레스타 엘렌웰:있어야 해. 안 그러면 너랑 나는 전부 죽을 테니까. (앞서 마을로 향한다.)
아트록스 벨리움:(저를 부르는 말에서 살짝 동요하더니-불쾌하단 쪽으로- 입구로 다가섰다.) 더 볼 게 없으면 가요, 엘렌웰.
디레스타 엘렌웰:그럴까... (말꼬리 흐려지며 이어지는 것은 오히려 그 반응을 뜯어 살피는 듯한 지독한 시선. 이윽고 시선을 거두는가 싶더니 이번에도 제가 앞선다.) 실망스러운 소득을 메우려면 조금 더 발걸음을 재촉해야 해, 아트.
아트록스 벨리움:(세세히 살피는 듯한 시선 피하려고 -곧 사그라들었지만- 다른 곳 보고 걷는다. 대피소까지 얼마나 남았을까... 아득해지기도 하고. 평소보다 빠르게 걸었다.)
마트 밖 하늘은 점점 어두워져만 가고 있습니다.
금세 동이 틀 것 같아요.
다시 어둠이 될 때까지 몸을 피해야 할까 고민하던 찰나, 앞서 걷던 엘렌이 입을 엽니다.
디레스타 엘렌웰:있지, 아트... 앞으로는 낮에도 이동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이 앞으로는 도로라서 좀비들이 많이 없을 거야. 네 입장에서도 하루라도 빨리 안전지대로 가는 게 좋을 테고. (묘한 낯으로 문득 돌아보며.)
아트록스 벨리움:(낮...) 제 의사를 꽤 많이 물어봐주시네요. (그렇게 해요, 낮에도 이동... 솔직히 좋은 의견 같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반박하기도 좀 애매했기 때문에 적당히 고개 끄덕인다.)
디레스타 엘렌웰:그래서, 혹시 불만이야, 아트? (괜히.) 어디를 어떻게 갈 건지는 알려줘야지. 너도 멍하니 따라오기만 하는 건 좀 그렇잖아. 그리고... 난 네가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걸 기대하고 있기도 하고. (아귀 들어맞지 않는 미소 환하게 지었다.)
아트록스 벨리움:그럴 리가 없잖아요, 엘렌웰. (...) 대신 낮에 이동하되 저번과 같은 일은, 피하시는 게 어떨까요. 당신까지 위험해질 수 있어서 하는 말이에요. (좀비 앞에 저를 방치해둔 것. 손톱으로 손 꽉 누르면서 애써 말한다.)
디레스타 엘렌웰:하하, 왜? 혹시 네 목숨이 위험해질까봐서? (지난한 시선. 머리카락을 스치고 네 목덜미에 손이 닿았다. 다시 눈빛이 내리깔린다.) 아트, 걱정하지 마. 나는 그래도 너를 꽤 아끼고 있거든. (다시는 그런 일 하지 않겠다 하는 흔한 대답 한 마디가 없다. 디레스타 엘렌웰이 늘어놓는 건 항상 그랬다. 사랑한다, 아낀다, 영원히 함께하자 따위의 겉만 번드르르하고 알맹이는 없는 말들. 하지만 그 어떤 말보다 네 속을 난잡하게 헤집어 놓을 수 있는 말들. 목덜미를 쓸어내리는 손자국이 짙어진다.)
아트록스 벨리움:(통상적인 사랑이나 아낀다는 말이 아니다. 그 사실을 알고, 외려 나열되는 말 한 마디마다 자각하지만 차마 부정해낼 수 없는 것. 그게 아니라는 간단한 문장 하나도 뱉어내지 못하는 것이 현재의, 그리고 과거 네 행동의 결과물이었다. 알면서도 끝내 받아들이는 제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쩌면 그렇게 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는지도 모르지. 나아가는 건 힘드니까.) 그건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죽지 않을 정도로만 지금 이렇게 살아있는 걸. 다시 말이 없다. 네 앞에서 목소리 내는 건 항상 힘겨웠다. 고개 돌려 손길 피한다.) 안전지대까지 무사히 도착했으면 좋겠네요. 낮이란 위험까지 감수했으니...
엘렌은 이윽고 말이 없어집니다.
손찌검이라도 하려나 싶어 눈을 마주하면, 예상과는 다르게...
멀거니 웃는 낯으로 당신을 바라보고만 있어요.
디레스타 엘렌웰:...그래. 무사해야지.
어쩐지 평소보다 반응이 느린 것 같기도 하고, 건성인 것 같기도 합니다.
엘렌은 그 말을 남기고 먼저 짐을 챙겨 거리로 나섭니다. 늦지 않게 따라나서는 게 좋겠어요.
외마디 비명도 곧 그치고, 고깃덩이나 다름없는 시체를 내리치는 둔탁한 소리만이 주변을 메웁니다.
아무 말 없이 쇠파이프를 내리치는 엘렌의 눈은 섬뜩하게 핏발이 서있습니다.
이젠 사람의 형체를 분간할수 없게 뭉개진 육신에서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튑니다.
이미 죽었을게 분명하건만 몇번이고 쇠파이프를 내리치는것을 반복하던 그는, 이내 거친 숨을 내쉬며 고개를 듭니다.
디레스타 엘렌웰:...아트. 안 물렸어?
아트록스 벨리움:(네가 하던 것 입 틀어막고 지켜보다가, 이내 손 내렸다. 발목엔 아직까지 잔상이 남아있는 것만 같지만... 동시에 수없이 봐온, 다만 전보다 조금 더... 이상하고 이질적인. 그런 행동이 더 깊게 파고들었다.) 그런 것 같아요. 여기에도 살아있는 사람이... (있었네. 정확히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디레스타 엘렌웰:...방심했으면 물렸어. 조심해. (그리 말하며 붉게 물든 셔츠자락을 걷어 올렸다. 우그러진 파이프를 바닥에 내던지다싶이 버린다.)
당신을 바라보는 그 표정은 살기를 띄었던 아까와는 다르지만.. ...여전히 두 눈만은 붉게 충혈되어 있습니다.
그 모습은, 당신이 기억하던 엘렌과는 조금 다르고, 조금 이질적인 것이었습니다. (SAN 0/1)
아트록스 벨리움:
SAN Roll
기준치:
40/20/8
굴림:
98
판정결과:
대실패
이어서 당신이 그에게 무어라 말을 꺼내려는 찰나, 끼익, 하는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트록스 벨리움:(머뭇거린다. 대답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리고.) 여기 있다가는 방금같은 좀비들이 올 수도 있으니 들어가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다른 이유도 있지만... 어찌되었든.)
디레스타 엘렌웰:(대답 대신 습관처럼 주먹을 폈다가 다시 쥐었다. ...뚝. 손아귀에서 핏방울 떨어진다. 이윽고 무언가 결심이 선 듯 깊게 숨 내쉬고는 손 허공에 털어버리더니, 벽 짚으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트록스 벨리움:(그런 너 바라보다가 따라서 들어간다. 벽에 흐드러진 미약한 핏자국 따라서.)
당신과 엘렌은 남자를 따라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습니다.
작은 사무실이라 세 사람이 들어가니 방이 꽉 찹니다.
당신과 엘렌이 짐을 풀고 자리에 앉자 남자는 자신을 소개합니다.
쥬드:이게 얼마 만에 만나는 생존자인지 모르겠네. 나는 쥬드라고 합니다.
아트록스 벨리움:아트록스 벨리움이에요. 안전지대로 향하는 중이고요.
쥬드:아, 안전지대! 당신네들도 그 캘버리로 향하는 건가? 반갑네요, 나도 마침 그곳으로 가려던 중이었거든요.
그런데 당신들은 왜 해가 떴을 때 움직인 거죠? 위험하다는 말도 들었을 거 아녜요.
아트록스 벨리움:...음, 더 빠르게 도착하기 위해서, 정도인 것 같네요. (정말이지 오랜만의 대화다. 타인과...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사람을 만나니 전보다는 약간 활기가 돌았다.)
쥬드:아, 그랬구나... 그렇다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네요. (잠시 뜸.) 그럼요, 혹시, 나랑 동행하지 않을래요? 어차피 목적지도 같잖아요. (속없는 미소 짓는다. 마찬가지로 당신으로 하여금 생기를 얻은 듯.)
아트록스 벨리움:그럴까요. 함깨 움직이기가 더 낫고... (입에서 차마 나오지 않는 얘길 억지로 꺼내낸다. 약간 간절한 기색 엿보이고.) 엘렌웰, 어때요?
디레스타 엘렌웰:(무감한 눈으로 빤히. 문득 한 마디만 툭 뱉는다.) ...아트. 저 사람이 우리를 배신하려고 했을 때, 네 손으로 직접 죽일 자신 있어?
아트록스 벨리움:(그럴 리 없다는 뻔한 말은 하지 않았다. 직접 죽일 자신이라니. 당신은 항상 이런식이야, 엘렌웰.) 물론, 당연히 필요하다면요. (거짓말이다. 사람이란 존재를 자의지로 죽일 생각도 용기도, 이후를 견뎌낼 단단한 무언가도 없어서.)
디레스타 엘렌웰:(난잡하고 갑갑한 시선. 네게 닿는 족족 내리꽃힌다. 한참을 그렇게 희미한 표정으로 너를 보다가, 이내 마른 웃음 흘리며 시선을 거뒀다.) ...그래. 네 마음대로 해. (그 정도 표정도 못 읽을 리가 없잖아, 아트. 답을 알고도 질문했다는 듯, 의도가 빤히 보이는 낯으로.)
아트록스 벨리움:(...넘어가주네. 그렇게 물밀듯 안도했다. 다시 엷은 미소로, 쥬드 보았다.) 결정되었네요. 동행하도록 해요.
쥬드:...이야, 의논 한번 살벌하네. (다소 굳은 몸짓. 겨우 우스갯소리 터트린다.) ...하하, 그치만 좋은 게 좋은 거죠! 우선은 여기에서 쉬어 갈래요? 배도 고플 거 아녜요. 같이 식사합시다.
그렇긴 해요. (...그래도. 하면서 차마 엘렌 가까이로 가지 않는다. 원래의 보폭을 걷고.)
쥬드:그렇죠? 지금까지 함께한 걸 보면 당신네들도 모종의 사유가 있었을 것 같은데. 당신 얘기를 좀 해봐요.
첫 만남은 어땠는지, 얼마나 알고 지냈는지,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요.
아트록스 벨리움:(내 이야기. 그러게,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이제는 떠올리려고 해도 묻힌다. 끔찍한 기억 잊길 강하게 소원하면 추후에는 잊혀지기 마련... 이전까지만 해도 선명했던 기억이 막상 말하려니 흐릿하다.) ...다정한 사람이에요. 저를 사랑해주고, 전 그에 화답해야 하고요. 알고 지낸지는 꽤 오래 되었네요.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구태여 불법직이라고 읊을 필요는 없겠다. 멍하니 생각나는대로 말 툭툭 뱉는다.) 가끔은 -실은 대체로- 거칠게 대하는데 이쯤은 감내할 수 있고요. 거창한 사유랄 건 없죠? (입꼬리 억지로 올려 웃는다.)
쥬드:오, 그래요? 하루종일 얼굴을 잔뜩 구기고 있길래, 괴팍한 성격인 줄 알았는데요. (주유소에서 있었던 일만 해도 그렇고요, 하하.) ...아마도, 당신이 아주 각별한가봐요. (흥미롭다는 듯 웃으며 턱을 문질렀다.) 그런데 어쩐지 당신은... 썩 내키지 않는 투네요. 아까만 해도 봐요, 평범한 지인 간 사이나 연인 사이 처럼은 안 보이던데. 정말 그를 사랑하는 거 맞아요? (어쩌면 잔인한 질문일까... 당신의 속을 떠보듯 장난스레 묻는다. 모든 인연에는 썩은 데가 있고, 특히 당신의 경우 제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결함이었으므로.)
아트록스 벨리움:(각별하다. 여러 의미로 그럴 수도 있겠네요.) 피곤해서 그런가봐요. 상황도 상황이다보니. (가볍게 내쳐진 질문에 수십, 어쩌면 수만가지의 생각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만큼의 무리한 사고를 감당하기 힘들었으므로 늘 하던대로 단정짓는다. 겨우 어제 처음 본 타인에게 이야기를 털어놓는다는 게 익숙치 못했으나 이렇게라도, 일말이라도 뱉어내고 `제대로`대화할 구실이 필요하긴 했다.) 평범해요, 정말. ...그의 사랑에 만족하고 있어요. 피차 만족하면 그 속내가 어떻든 좋은 것 아니겠나요. 깊게 파고들어 머리 아플 일 만들 일도 없고. (...)
그 말을 들은 쥬드는 고개를 주억입니다.
쥬드:뭐, 세상에는 그런 사랑도 있는 법이죠. 모쪼록 잘 살아요.
당신과 그의 일, 그리고 자신을 분리하려는 듯이요. 이만 손을 떼겠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디레스타 엘렌웰:...그래, 아트. 너는 날 절대 못 죽이겠지. 네가 어떻게 그러겠어. (네 손을 잡고 캐비넷에서부터 부드럽게 끌어낸다. 무책임할 정도로 다정한 손길이 널 그러안았다.)
아트록스 벨리움:(누구보다, 심지어는 제 자신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 당신은 구태여 물었다. 서늘한 공기였음에도 몸이 뜨거웠고, 그만큼의 넘칠 것 같은 위태로움을 의미한다. 항상, 언제나. 살아간다고 말하면서 이 책임도 증명도 없는 다정에 죽는다. 꼭 지금의 기분은... 목 매 죽을 것만 같았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항상 그랬던 것처럼, 답을 정해두고 요구해주세요. 엘렌, 엘렌웰. (제발. 안긴 품이 찼다. 그리 어설프게 안은 채로 칼날 네 쪽 향하다 결국엔 약한 손 힘에 떨어트리고 만다. 바닥과 날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디레스타 엘렌웰:(어느 순간부터 정답을 알고도 네 목소리로 답을 듣고 싶었다. 제 답을 네게 확신 받고 싶다는 욕심. 여느 연인들이 그런 사랑을 하듯, 떨리는 목소리로 서투르게 고백을 하듯. 심장에서부터 불규칙하게 열기가 퍼져나간다. 금방이라도 잿가루로 화해버릴 것 같음에도 다시 온기를 갈구한다.)(...그러니까, 제 서투름은 전부 너였다. 내 모든 것을 네가 부수고 다시 재정립해. 폭력도, 애정도, 지겨운 다정까지도 그게 전부 너였어. 아트, 나는... 늦어버린 사랑을 하고 싶어.) ... ...내가 언제 네 말을 들은 적이 있었나? 무슨 일이 있든 간에 너는 내 한 생을 불태워 죽도록 살아야 하잖아. 너는 지금껏 해왔던 대로, 안전지대로 가면 돼. 내가 모든 걸 설명할 수 있어. (익숙하고도 유려한 발걸음이 너를 이끈다. 끌리듯 핏자국을 남기는 스텝.) ...자. 캘버리로 가자, 아트.
아트록스 벨리움:(매일 아팠다. 그게 어떤 의미든, 편히 잔 날 없었고 몸에 흉 지지 않은 날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비루하게 다시금 네 손을 마주잡는다는 건, 혹자는 부드럽게 끌어안는대로 안긴다는 것은. 이루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영역이었다. 지극히도 이성적이라 사고를 외면했다. 지금이라고 다를 건 없다만, -오히려 그것이 부각되는 상황이다.- 내가 당신을 죽일 수 없음은 분명하다. 칼을 쥐여주고 목에 가져다 대어도, 총을 안겨주고 죽이라고 하여도. 단순히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한 거부감 뿐만이 아닌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단 하나, 당신이라서. 어느 날은 그토록 죽어버리길 바랐고 또다른 날은 다정하게 굴면서 저를 바라봐주길 바랐던 한 계절의 하루살이 정도였다...) ...원하는 대로. (지독한 캘버리로 가요. 나를 몇 번이고 찔러 죽인, 살인자에게. 새장의 주인인 당신에게.)
디레스타 엘렌웰:내가 너를 위해 내 온 생을 다해 치료제의 공식을 알아냈다고 하면, 넌 믿겠어?
아트록스 벨리움:(...정말로.)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믿지 않을 수가 있겠어, 당신이 나를 이렇게 진창에 몰아넣고서는 그렇게 물으면.)
디레스타 엘렌웰:...하하, 신기하지?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내가 죽은 후의 네 인생이 평생 나를 애도하는 데 쓰이기를 바랐을 수도 있고, 이렇게라도 너의 트라우마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르지.
...그래도, 아트.
난 네가 좋았어. 딱 죽을 만큼.
엘렌은 평온한 낯으로 말을 이어갑니다.
디레스타 엘렌웰:어떤 한 남자가 내 꿈에서 제안을 하더군. 치료제의 공식을 알려줄 테니 네가 대신 죽겠느냐고.
원래는 응할 생각이 없었어... 당연하잖아. 얼토당토 않았지.
그렇지만 이걸 해야지 널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어. 나는 결국에 널 살리고 싶었던 거야.
...그러니까, 아트.
나를 위해 살아남아 주지 않겠어?
아트록스 벨리움:(제가 살아서, 또다시 죽어가는 모습을 원해서. 살아도 살지 못한 생을 혼자 견뎌내게 하려는 거라고... 또 그렇게 생각했다. 온 몸 피부 전체에 깊게 패인 흉터보다도 아프고, 길기만 한 끔찍한 생을 이어가라는 것으로 들렸다. 네 발치에서 수십, 수천 번을 애원했던 말을 다시 뱉는다. 기도하듯이. 눈가가 뜨겁다. 애정이라고는 한 톨도 담지 않은 채로, 독한 집착과 이기심이 담긴 말인 것처럼.) 부탁이에요, 엘렌. 제발, 저를 사랑하지 말아주세요. 생애 단 한 번이라도... (그렇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을 터다. 죽고 싶지 않았고, 죽은 생이라도 살아가고 싶어서 앞으로 내디딜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디레스타 엘렌웰:(어쩌면 정답이었다. 결국에 이 사랑은 당신 인생에 지독히 파고들어 평생을 망가트릴 것이고, 매일 밤 열띤 양협을 스치며 속삭이던 사랑 고백은 매일 악몽처럼 당신 귀에 울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당신은 버겁게 당신을 짓누르는 애정을 떠안고, 나를 기억하며, 터무니 없이 망가져만 가겠지. 나는 그게 좋았다. 내 삶의 종지부를 당신 삶의 낙인으로 남기고 싶었다. 터오는 아침 동을 고요한 미소가 살라먹는다.)(잊지 마, 아트. 달이 공전을 하고 태양이 우리를 비추는 것 처럼 당연하게, 나를 네 삶의 완벽한 균열로 남겨 줘.) ...나는 온 생애에 걸쳐서 너를 사랑했어. 단 한번도, 널 사랑하지 않으며 잠든 나날이 없었을 정도로. (그리고 여느 영화에 나오는 낭만주의자들이 으레 그러하듯, 네 허리에 제 팔을 둘러 감싸 안는다. 흔연하게 웃는 입술.) 그리고 나는 너 역시, 생애 단 한 번이라도 나를 사랑했을 거라고 믿어. 나는 네가 그 순간 안에서 일생을 헤매며 살았으면 좋겠어.
아트록스 벨리움:(짙다. 말이, 공기가, 그리고 제게로 온 네가 짙다. 균열은 점차 퍼져 행복했던 내 생의 전부로 자리잡고 날 망쳤다. 이제는 되돌이킬 수 없이 받아들이는 것만이 답이다. 이미 자신은 잠식된 시체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당신의 욕심은 성공한 격이다. 그것도, 완연하게. 영원히. 사랑과 집요함 끝맺어지지 못할 기억 속에서 평생을 비참하게 유영할 제 미래를 알기 때문에 전보다 배는 더 괴로웠다. 해가 눈동자에 비친다. 처음이자 마지막 색을 머금고, 강요된 상황에서 자처한 마지막 사랑도 입에 담았다. 떨려 마지않는 몸으로, 차마 안았다고 하지도 못할 만큼 어설프게. 그 다음 고개 들어올려 입 맞춘다. 이제 떠오르는 해가 당신과 자신 사이를 갈라놓았기 때문에 얼마나 깊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유 모르게 흐른 눈물 닦을 새도 없이 끝난 최후의 사랑이었다. 당신을 증오하는, 날 이루는 모든 게 당신을 향한 얄팍한 사랑이었다고. 입을 떨어트리고도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눈 앞이 찬연한 아침 태양빛이다.)
디레스타 엘렌웰:...이제 영영 못 볼 건데 마지막쯤은 진심으로 말해줘도 괜찮지 않아? (네 어깨에 조용히 기댄다.) 하하, 그래도 살아갈 수 있게 되었잖아. 나는 네 안에서 한 세기의 지리멸렬한 증오이자 사랑으로 기억될 테고. (...) 네 마지막 사랑의 죽음을 목도하는 기분이 어때, 아트.
아트록스 벨리움:(아마 당신은 매일 저녁이면 저녁마다 아침이면 아침마다 제 곁에 있을 걸요. 부서지지 않고, 잡히지도 않는 채로.) 진심 같은 것 애초에 있지도 않았는 걸요. 이미 다 묻혀서... (...) 기뻐요, 정말. 이제 저녁마다 제 피에 파묻혀 잘 일은 없을 테니까요. (아주 일부의 진심만 내뱉는다. 극히 일부 중 일부.) 디레스타 엘렌웰, 죽고 나면 저를 잊어주세요. (부디.)
디레스타 엘렌웰:...그래도 그런 점이 귀여운 거지. (웃으며 이마에 입술 내리누른다.) 그래, 그건 기쁘겠네. 하지만 그것도 전부 네가 넌더리를 치던 사랑이었어. 너는 그럴 때마다 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를 걸, 아트. (창백한 손가락 쓸어내리며.) ...하하, 내가 널 잊을 리가 있겠어? 무슨 수를 써서도 떠안고 갈 거야. 이 지독한 캘버리의 풍경, 네 눈물과 애정까지도.
아트록스 벨리움:(...마지막까지 넌더리 나는 사람이다. 애초부터 기대도 않았지만. 당신은 내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럼 후회라도 해주세요, 엘렌. 날 죽인 것에 대해서 아주 지독하게. 바람 소리에 묻혀 들리지도 않을 정도의 마지막 속삭임이었다.)
...
저 먼 초원의 지평선 너머로 밤의 장막이 서서히 걷히며 해가 뜨고, 주변이 차츰 따듯한 빛으로 물들어갑니다.